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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영화 정보와 줄거리는 씨네21에 꽤 자세히 나와 있다.

 http://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php?id=7169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학교가 끝나고 까불면서 뛰어나가는 건 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즐거움이다. 

그러다가 네마자데가 넘어지고 책가방이 쏟아진다. 

짝궁 아마드는 넘어진 네마자데를 도와주다가, 그의 공책이 그만 자기 가방으로 딸려 들어온다.


우리는 조금 전 숙제검사 장면에서 아주 무서운, 동시에 정말 익숙한, 선생님을 보았다. 

숙제는 반드시 정해진 공책에 해야 하는 것이고, 안 그러면 퇴학을 시키겠단다. 

이 협박은 그 전날 사촌 집에 숙제공책을 놓고 온 네마자데를 겨냥한 것이었다. 


집에 와 숙제를 하려던 아마드는 똑같은 모양의 숙제공책이 두 권이 있는 것을 본다. 

한 권은 네마자데의 것. 

당연히, 친구의 퇴학을 막기 위해 아마드는 짝궁의 공책을 소중히 품에 안고 달린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친구가 어디에 사는지를 모른다. 

야산을 두어 개 넘어가야 나오는 포쉬테라는 마을에 산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영화는 이 단 하나의 질문으로 구성되고,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게 꽤나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아마드는 내내 달린다. 마라톤 중계를 볼 때 선수들이 몹시 안쓰러워 보인 적이 있었는데, 

이건 또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이 질주에 어른들의 폭력이 결부되기 때문이다. 

선생님, 엄마, 할아버지, 그리고 두 명의 문 만드는 어른들이 대변하는 

무관심, 무능력, 완고함이 무거운 짐이 되고, 

가벼운 공책만 갖고 뛰어가도 좋았을 어린이는 

이 짐을 모두 짊어지고 고통스럽게 달린다.



영화 내내 제시되는 두 개의 이미지는 문과 길이다.

시작 장면에서는 낡은 교실 문이 한참을 삐걱거린다. 

아마드가 ‘네마자데’의 아버지로 착각한 아저씨는 문을 만드는 사람이고, 

유일하게 아마드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역시 그 무능에 있어서는 매한가지인 노인 역시 평생 문을 만들어온 사람이다. 

심지어, 중간 중간에 아마드가 얻는 수수께끼같은 정보들 역시 

‘계단을 끼고 있는 파란 문’같은 형식으로 전달된다.


결국 밤이 깊어 비를 쫄딱 맞고 집에 돌아온 아마드는 

네마자데의 몫까지 자신이 숙제를 하기로 하는데, 

비바람에 방문이 느닷없이 열린다. 

문 밖에는 아까 낮에도 그랬던 것처럼 빨래를 수습하는 엄마가 서있다. 

마치 아마드가 다녀온 길고 긴 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문은 필연적으로 길과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종일관 문과 길을 날카롭게 단절시킨다. 

인근 집들의 문을 다 만들었다는 늙은이는 아마드를 데리고 길을 나서지만 

그것은 사실 가지 않느니만 못했던 길이었고, 

결국 그는 아마드의 길을 끝까지 동행해주지 못하고 

자기가 만들어 놓은 문 속으로 사라진다. 


무능하고 완고한 아마드의 할아버지는 

아예 길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으로만 등장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양반이 한 때는 길 만드는 기술자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축적된 길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손자에게 헛된 길을 왕복하게 하는 데에만 쓰일 뿐이다.


아마드는 문을 만드는 사람들에게서 

어떤 결정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고 

두 번을 따라가는데, 이 길은 두 번 모두 ‘네마자데’에게로 이어진다. 

하지만, 짝궁 네마자데가 아니다. 


교실에서 네마자데는 자기 옆에 앉는 친구지만, 

저 문밖을 나서면서부터는, 찾을 수 없는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아이도 저 아이도 다 네마자데로 불리우고, 

숙제 공책도 똑같은 모양인데다가, 

심지어는 바지의 색깔과 헤진 모양까지 같다. 

아마드는 몹시 고약한 미로 속에 갇힌 셈이다.



아마드가 하루 종일 달린 길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엄마는 이제 혼내기도 귀찮다는 표정이고, 

다음 날 아침에도 선생은 숙제가 우선이고 집안일은 나중에 도우라는 등 

전쟁 중에 이미 무너져버린 원칙들을 설교하며 아이들을 협박한다. 

지각을 한 아마드가 포쉬테에서 왔다고 말할 때, 

선생은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다.


어른들은 아마드의 길을 무시하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동시에 그에게 정말 쓸모없는 길을 강요한다. 

아무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그는 완전히 고립된 캐릭터이다. 

그러나 그는 네마자데를 구한다.

아마드는 어떤 어른들도 알지 못하는 길을 다녀온 것이다. 

그는 큰 숙제를 해냈다. 

  

by Odysseus | 2010/12/31 14:11 | 이런 일이 다 있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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